삭힌 홍어, 호불호가 강한 이 음식! 언제부터 먹게됐나?

한국의 전통 음식 중에서 취향이 극명하게 나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삭힌 홍어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특유의 강렬한 암모니아 향과 톡 쏘는 맛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당황하기 일쑤이지만 한 번 그 매력에 빠진 이들은 대체 불가능한 최고의 별미로 꼽습니다.

저 역시 홍어 무침만 접하다가 삭힌 홍어를 처음 먹었을 때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이 독특한 음식을 우리 선조들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경로를 통해 처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을 알아볼까 합니다.

나무위키 – 홍어

삭힌 홍어

고려 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홍어

한국인이 홍어를 먹기 시작한 역사는 최소 고려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문헌상으로 홍어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고려 말기인 14세기 정전이 편찬한 본초정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홍어를 포획하고 식재료로 활용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지리지와 조리 서적, 그리고 백과사전식 저술에 홍어에 대한 기록이 더욱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조선 후기의 정약전이 저술한 어류학서 자산어보에는 홍어의 생태적 특징과 효능이 매우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는데, 홍어의 모양새는 물론이고 낚시 바늘을 무는 습성이나 음경이 낚시 바늘에 걸려 잡힌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삭힌 홍어의 시작

흑산도 주민의 강제 이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특유의 삭힌 홍어 유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이 흥미로운 음식의 탄생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불안정했던 정치적, 군사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는 왜구의 잦은 침입과 약탈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해안가 섬 주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왜구에게 세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섬을 강제로 비우는 공도 정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이 공도 정책으로 인해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흑산도와 영산도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육지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습니다.

주민들이 배를 타고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새로 터전을 잡은 곳이 바로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영산포인데, 고향 섬을 떠나 낯선 육지 내륙에 정착한 주민들은 늘 고향 바다에서 잡히던 신선한 생선과 음식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영산강 돛단배 수송선에서 발견된 발효 음식

고향의 맛을 잊지 못했던 이주민들은 종종 흑산도 근해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 배에 싣고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영산포까지 가져오곤 했습니다.

문제는 당시의 열악한 교통 수단이였는데, 돛단배 하나에 의지하여 흑산도에서 나주 영산포까지 이동하는 데는 보통 7일에서 10일, 기상 악화 시에는 그 이상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냉장 기술이나 얼음을 이용한 보관법이 전혀 없던 시절,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일주일 넘게 강바람을 맞으며 이동하다 보니 배에 실어 온 대부분의 물고기는 나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완전히 부패해 버렸습니다.

심한 악취와 함께 내장이 녹아내린 생선들은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모두 버려야 했지만 홍어만큼은 달랐습니다. 다른 생선들처럼 지독한 냄새가 났지만 신기하게도 살이 탱탱하게 유지되어 있었고 버리기 아까워 먹어본 결과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숙성되는 과정에서 특유의 알싸한 감칠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더해져 매력적인 풍미를 낸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라도를 대표하는 별미, 삭힌 홍어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오랜 시간의 이동이 만들어낸 우연한 축복이자 새로운 발효 음식의 탄생이었습니다.

홍어가 발효 음식이 될 수 있는 이유

일반적인 생선은 상온에 며칠만 두어도 쉽게 부패하여 식중독을 유발하는 독소를 뿜어냅니다. 그렇다면 왜 홍어는 일주일이 넘는 수송 기간 동안 썩지 않고 안전하게 발효될 수 있었을까요?

홍어는 체내의 수분 균형을 유지하고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다른 어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요소를 피부와 근육 조직에 함유하고 있어, 홍어가 죽게 되면 이 체내의 요소가 암모니아 성분으로 빠르게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는 매우 강한 알칼리성을 띠게 되며, 이는 인간의 코를 찌르는 특유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이 강한 알칼리성 암모니아 성분은 식품을 부패시키는 유해한 세균이나 식중독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강력한 천연 항균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유해균은 모두 사멸하고 홍어 자체의 단백질 분해 효소에 의해 살이 부드러워지면서 맛 성분인 아미노산이 풍부해지는 발효 현상만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과학의 ‘과’ 자도 모르던 시절,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이 준 환경 속에서 안전한 발효의 지혜를 몸소 습득한 셈입니다.

나주 영산포에서 전국으로

홍어 삼합

우연한 기회로 안전하게 삭혀진 홍어의 맛을 알아챈 나주 영산포의 이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이 독특한 생선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영산포 구진포 일대에는 홍어를 전문적으로 삭히고 판매하는 시장과 보관 창고들이 들어섰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전라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삭힌 홍어가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내륙 지역에서는 신선한 바다 생선을 먹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기 보관이 가능한 삭힌 홍어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잔칫상에 빠져서는 안 될 최고의 음식으로 대접 받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전라도 지역의 결혼식이나 상가집, 회갑연 등 주요 경조사에는 홍어가 빠지면 잔치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상징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잘 익은 묵은지와 함께 곁들여 먹는 홍어 삼합 역시 이 영산포와 전라도 내륙의 식문화가 결합하면서 완성된 한국 고유의 미식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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