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태풍 피해를 남긴 5건을 선정해 당시 상황, 피해 규모, 인재 요소까지 살펴봅니다.
2002년 루사 당시 충북 영동 수해 현장에서 400여 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복구를 이끈 생생한 기록도 담았습니다.

2002년 여름, 충북 영동은 물에 잠겼다.
하늘은 멈추지 않았고, 마을은 지워지듯 사라졌다.
그해 나는 충주대학교 제19대 총학생회장이었다.
당시는 대학생들이 방학마다 농촌 봉사 활동이나 국토 대장정 등 다양한 봉사 활동 및 도전에 나서던 시기였다.
그런 ‘자발적인 연대’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우리 학교 학생 약 400명을 모집해 8대의 버스를 대절했고, 새벽 5시에 모인 우리들은 수해 복구 활동을 위해 충북 영동으로 향했다.
삽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리고 1년 뒤,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자연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왔고,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무너졌다.
지금도 반복되는 폭우와 태풍,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다.
1. 루사(2002년) – 최악의 태풍 피해, 그리고 현장에 있던 나
- 발생일: 2002년 8월 30일
- 피해 규모: 사망·실종 246명 / 약 5조 1,500억 원
- 피해 지역: 강릉, 삼척, 충북 영동 등
왜 피해가 컸나?
강릉에는 단 하루에 870.5mm의 비가 쏟아졌다.
이 기록은 기상청 관측 역사상 최대치였다.
하천은 범람했고, 산은 무너졌으며, 도시 기반 시설은 붕괴됐다.
현장 이야기
나는 총학생회장으로서, 전국적인 자원봉사 열기 속에서 400여 명의 학우들과 함께 충북 영동으로 향했다.
삽을 들고 마을 복구에 나섰던 그때, 학생들의 구슬땀이 주민의 눈물과 뒤섞이며 대한민국이 가진 연대의 힘을 실감했다.
이것은 단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으로 다시 일어선 기록이었다.
2. 매미(2003년) – 도시를 찢은 바람의 이름
- 발생일: 2003년 9월 12일
- 피해 규모: 사망·실종 131명 / 약 4조 2,000억 원
- 피해 지역: 부산, 경남, 제주 등
왜 피해가 컸나?
비가 아니라 바람이었다.
순간 최대 풍속 60m/s, 태풍 사상 가장 강한 돌풍이었다.
지붕이 날아가고, 유리창이 깨지고, 항구는 선박 폐허가 되었다.
예방할 수 있었나?
지하주차장 침수, 늦은 대피, 미비한 풍속 대비 설계.
‘자연’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준비되지 않은 도시’였다.
3. 사라(1959년) – 관측조차 없던 시대의 비극
- 발생일: 1959년 9월
- 피해 규모: 사망·실종 약 849명(추정)
- 피해 지역: 경북, 경남, 대구 등
피해 요인
이전까지 본 적 없는 강풍과 폭우.
당시는 기상 예보도, 경보 방송도 없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에서야 피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 방재 행정을 체계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4. 볼라벤(2012년) – 이상기후가 만든 새로운 재해
- 발생일: 2012년 8월
- 피해 규모: 사망·실종 26명 / 약 6,365억 원
- 피해 지역: 제주, 전남, 수도권
무엇이 달랐나?
이 태풍은 강수량보다 강풍 피해가 더 컸다.
낙과 피해, 가로수 전도, 트럭 전복, 신호등 정지 등 일상 속 ‘작은 파괴’가 누적되며 큰 재난으로 이어졌다.
5. 힌남노(2022년) – 지하주차장의 함정
- 발생일: 2022년 9월 6일
- 피해 규모: 사망 14명 / 약 8,000억 원
- 피해 지역: 포항, 울산, 경북
왜 충격이 컸나?
포항 지하 주차장에서 9명이 동시에 희생됐다.
그건 더 이상 ‘예상치 못한 사고’가 아니었다.
과거 태풍들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된 대피 매뉴얼 부재와 지하 공간 안전 미비가 또다시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태풍 피해는 단순한 자연의 분노가 아니다.
그 뒤에는 늘 사람이 놓친 준비와 기억이 있었다.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되고, 반복은 또 다른 희생을 만든다.